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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경재배 시스템의 역사

물과 식물이 관계가 있다고 생각한 과학자들

  • 17세기의 벨기에의 화학자인 반 헬몬트는 2Kg(5파운드) 정도 되는 버드나무를 약 90Kg(200파운드)의 흙을 담은 큰 화분에 심고 물만 주는 실험을 실시. 5년동안 재배한 결과 식물은 약 75kg으로 성장하였으나 흙은 57g만 감소한 것을 보고 물이 식물을 생장시켰다는 이론을 제시
  • 당시까지는 식물의 영양성분(질소, 인산, 칼륨 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였다는 것을 고려할 때 식물 생장의 원인을 찾아본 최초의 체계적인 과학실험이라 할 수 있다.
John Woodward
By by William Humphrey (died circa 1810), after an unknown artist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3AJohn_Woodward.jpg
  •  1699년 영국의 존 우드워드가 스피어민트(spearmint)를 심고 물의 종류를 달리한 실험에서 토양과 물의 상호작용이 존재한다는 것을 밝힘.  우드워드는 빗물, 템즈강 물, 하이드파크의 하수 등 각기 다른 물을 주어서 기르면 토양의 유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을 관찰했다. 
  •  빗물을 기준으로 템즈강 물은 1.5배, 하이드파크의 하수는 8배, 여기에 잘 가꾼 정원의 흙을 섞어 하이드파크의 하수로 키운 것은 16배가 성장하였다.

 

물 속의 영양분도 중요하다

  • 스프렝겔리비히는 토양속의 어떤 양분이 결핍될 경우 다른 양분의 흡수도 저해된다고 주장하였고, 이후 다른 연구들로 질소, 인산, 칼륨 등이 필수적이고 그 외의 미량 원소들도 필요함을 실험으로 증명하였다. 

 

  • 19세기 독일의 식물학자 삭스(Julius von Sachs)는 어떤양분이 작물생장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알기 위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수경재배의 기초를 확립했다. 그는 식물이 자라면서 어떤 영양분을 얼마만큼 흡수하는지를 보기 위한 실험을 진행했는데, 이러한 실험 방식은 현재까지도 생리장해 등의 연구를 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흙의 역할은

By Bjornwireen (자작) [CC BY-SA 3.0 또는 GFDL]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3ARoot_rot_in_cicer_arietinum_(hydro-grown).jpg
  • 본래 토양은 작물이 필요로 하는 영양분을 만들거나 보유하며 식물체가 클 수 있도록 지지하는 역할을 한다. 원래 토양의 구성성분 중에 포함된 질소, 인산 등은 물에 닿거나 뿌리와 접촉하면 녹아서 식물체에 흡수된다. 이러한 무기질은 토양 생성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기거나 동식물의 사체등 유기물이 박테리아에 의해 분해된 것이다. 식물의 뿌리는 필요한 양분을 토양으로 부터 흡수할 뿐 아니라 식물체가 서 있을 수 있도록 지지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다. 
  • 수경재배에서 양분과 뿌리의 호흡에 필요한 산소는 물을 통해 공급하고 식물체를 지지하는 역할은 배지나 구조물이 담당하게 된다. 뿌리가 담겨지는 양액부와 식물을 지지해주는 지지부가 나뉘어지는데 다양한 소재가 지지부에 이용된다. 
  • 최초의 수경재배에서는 나무나 철망으로 만든 판에 구멍으 ㄹ뚥어서 식물체가 판과 닿는 부위를 부드러운 폼으로 감싸두었다. 이후 자갈을 이용하거나 모래등이 쓰이다가 점차 인공토양인 하이드로볼, 질석, 펄라이트 등이 사용되고 있다. 

수경재배의 시작

  • 식물이 자라는 원리는 밝혀졌지만 수경재배가 실용화되기 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1920년대가 되에서야 작물생산 방식으로 관심을 끌게 되었다. UC 버클리의 윌리엄. F. 게릭(William Frederick Gericke)에 의해 Hydroponics나 Water Culture 같은 명칭이 제안 되었으며 재배방법이 확립되었다. 그는 토양 대신 식물체를 지지하기 위해 철망을 깔고  그 위에 톱밥과 질석 등을 채워서 작물을 지탱했다. 뿌리는 양액에 담근 채로 물탱크에 산소를 공급하여 재배하는 방법을 확립하였다. 그는 1940년 원예작물의 무토양 재배법에 대한 지침서(Complete Guide to Soilless Gardening)를 펴내어 수경재배를 널리 알리고 상업화를 가속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 1930년대 항공사의 재급유 기지로 사용되던 태평양의 척박한 섬인 웨이크 섬에서는 대기하는 승객들에게 채소를 제공하기 위해 수경재배를 이용했다. 이후 2차대전 중에도 태평양 군도에 주둔한 미군은 수경재배법을 응용하여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자체적으로 채소를 생산하는데 활용하였다. 
  • 전후 일본의 조후 시와 시가현 등에서 미군에게 필요한 채소의 공급을 위해 수경재배가 도입되었는데, 이때 도입된 미국의 수경재배기술을 기반으로 이후 일본은 수경재배의 선진국으로 도약한다. 

수경재배의 발전

  • 한편 2차대전 후 유럽은 미국의 재건계획에 의해 생활과 산업기반을 재건하는 가운데 수경재배의 장점을 발견하였다. 유럽은 상하수도, 농업기반, 생필품 생산기반 등이 무너져 미국에서 이를 재건하기 위한 마셜플랜을 계획한 것이다. 경제재건을 돕는 계획 중에는 수경재배 기술의 보급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경재배는 전후 농지 부족과 물자 부족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급속히 확산되었다. 

 

Salad dengan sistem NFT
박막식 수경재배를 이용해 재배중인 채소.
By Izhamwong (자작)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3ASalad_dengan_sistem_NFT.JPG
  • 이후 유럽에서도 독자적인 수경재배법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영국의 온실작물연구소의 쿠퍼(Allen Cooper)는 기존 담액식 수경재배의 단점을 개선한 박막식 수경재배(Nutrient filim technique)라는 기술을 개발하였다. 박막식 수경재배는 기존의 물을 담은 탱크에서 재배하는 것보다 산소공급과 뿌리 활력유지라는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장점이 있었다. 

 

rock wool
By Achim Hering (자작) [GFDL 또는 CC BY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3ARockwool_4lbs_per_ft3_fibrex5.jpg
  • 1968년에는 덴마크의 그로단(Grodan)이라는 회사에서 농업용 암면(Rock wool)을 개발했는데 70년대 유럽 전역의 수경재배의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암면은 기존의 담액식 이나 박막식 보다 뿌리 성장에 유리한 환경을 제공해서 기존의 방식을 빠르게 대체하였다. 

 

NASA astronauts Scott Kelly and Kjell Lindgren take a bite of plants harvested for the VEG-01 investigation.
ISS에서 기른 채소를 시식하는 NASA 우주인 Scott Kelly와 Kjell Liindgren
By NASA [Public domain]
https://www.nasa.gov/sites/default/files/thumbnails/image/iss044e045825a.jpg
  • 이후 수경재배 기술은 우주에서의 식량생산 기술로 주목받으며 연구되기 시작하였다. 1971년에는 소련의 살류트 우주정거장에서 무중력 상태에서의 식물생장과 식량생산 실험이 시도되었고, 미국의 NASA에서는 국제우주정거장등에서 우주인들에게 신선한 채소를 길러먹을 수 있는 실험을 실시하고 있다. 
이 부분의 글은 [농촌진흥청, 농업길라잡이-71(개정판), "수경재배(양액재배)", 2013년]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공공누리 3유형-출처표시-변경금지]

한국에서의 수경재배

우리나라에서는 1954년 부터 수경재배에 대한 기초연구가 시작되어 청정채소 공급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으나, 그 후 사회적 여건변화로 인하여 수경재배에 관한 시험연구는 약 20년간 중단되었다. 이후 1970년대 말 부터 원예시험장을 주축으로 재개되어 현재까지도 활발한 연구가 수행되고 있다. 1980년대에서는 저원가 농가보급형 시설의 개발, 각종 고형배지를 이용한 작물재배 등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주요 과채류에 적합한 질소 급원형태별 적정비율 등에 관한 시험이 이루어졌다. 1987년에는 토마토, 오이 및 여러종류의 엽채류 재배에 적합한 표준배양액을 만들어 보급하였다. 1990년대에는 정부의 시설현대화 사업과 맞물려 토경재배 방식에서 인공배지경 재배방식으로 전환하게 되었다. 1995년부터 펄라이트 배지 중심으로 과채류 전용배양액과 제품전용 비료, 배지경 시스템 등이 개발되어 시범사업으로 확산되었다. 장미를 비롯한 화훼 작물은 암면배지 재배가 주류를 이루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고가의 외국산 양액자동공급시스템을 대체하고자 양액의 적정 공급량과 급액 방식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 연구를 거쳐 한국형 양액 자동공급시스템도 개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살균기, 이온, 수분계측센서 등과 베드, 배지 등의 자재 개발 및 도입업체가 활성화 되었고, 양액 분석 및 조제 프로그램이 산업화 되었으며 전문 분석업체도 탄생하여 원예산업과 수출농업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미래지향적이면서 환경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한국형 순환식 수경재배시스템도 개발되어 배양액을 재사용함으로써 20~30% 지하수와 양액비료를 절감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서의 수경재배 현황

우리나라의 수경재배는 1954년 중앙농업기술원에 수경재배 온실이 만들어지면서 시작되었지만, 그 후 20년 동안 연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후 1977년 원예시험장(현 국립원예특작과학원)에서 순수수경재배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였으며 1989년에는 간이 식물공장 실험까지 급속한 발전을 가져왔다. 이와 같은 연구에 힘입어 농가에도 수경재배가 보급되었다. 1980년대 초에 훈탄배지를 이용한 수경재배가 도입되기는 하였으나 배지가격 등 경제성이 없어 실패하고,, 1990년 이전 까지 역경재배와 순수수경재배를 하는 약 10학타르 정도의 농가만이 명맥을 유지하였다. 1990년대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타결로 세계자유무역강화 움직임이 감지되자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통하여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농가가 발생하며 수경재배 면적은 급격하게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표1 - 수경재배 면적의 변화 : 농촌진흥청(2013)

수경재배 면적은 1992년 13헥타르에서 1996년 275헥타르로 4년 사이에 20배, 2000년에는 763헥타르로 2.8배 증가하며 급격히 성장하기 시작하였으며, 2000년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재배면적이 증가하고 있다. 

농가에서 고품질 농산물 생산과 샹산성 향상을 위한 목적으로 이용되던 수경재배가 최근에는 인공광을 이용하는 식물공장의 형태로도 발전하고 있다. 식물공장이란, 작물 생육에 필요한 빛, 온도, 공기, 양분의 환경을 인공적으로 제어함으로써 자연환경의 영향을 배재하여 공산품과 같이 계절이나 장소에 관계없이 생산이 가능한 생산 시스템이다. 최근에 식물공장이 세간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세계적으로 LED기술이 발전함에 따라서 상업화 가능성이 높아지며 농업기술과 첨단산업의 기술융합을 통하여 새로운 활로를 개척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식물공장이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1990년대 초 농림부가 첨단기술 농업의 일환으로 유리온실 지원 사업을 시작하여 식물공장의 기초연구가 진행된 것 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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